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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

얼마 전에 여동생이 우리 집에 와서 묵었다. 그녀의 운동 루틴은 여행을 와도 여전했다. 제일 하기 싫은 것을 제일 먼저 한다고 한다. 일어나면 커피를 들고 운동복 차림으로 나왔다. 미국 동네는 공원 같다면서, 아침 기운을 받아 생생해진 꽃나무들을 구경하면서 걸었다. 동네 길을 구석구석 돌고 오면 한 시간 정도 걸린다. 나는 평소에 걸어도 20분 정도가 고작이다. 걷는 흉내만 내는 나와는 달리, 동생은 진지하게 걸었다. 그만 걷자고 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도 따라서 열심히 걸었다. 동생은 걷기가 끝나면 스트레칭을 했다.   그녀는 두 다리를 살짝 어긋나게 겹쳤다. 팔을 위로 뻗치고 허리를 굽혀서 손을 땅에 댄다. 하늘을 향해 기원이라도 하는 듯 동작이 엄숙하다. 온몸에서 땀을 줄줄 흘리는 동생이 신기했다.     “언니 등이 굽었어.”     그녀의 움직임을 멍청히 보고 있는 나에게 말했다. 그냥 서 있기도 멋쩍었다. 나도 스트레칭을 따라 했다. 두 팔을 앞으로 펴서 돌리고, 뒤로 깍지를 껴서 어깨를 펴 주고… 처음에는 중심을 잡지 못했다. 흔들리고 쓰러졌다. 엉성한 동작으로 며칠을 따라 했다. 그랬더니 뭐랄까? 허리께에 고무줄이라도 두른 것처럼 몸체가 늘어나는 것 같았다. 어깻죽지를 펴고 가슴을 세우니 숨이 잘 쉬어졌다.     내 안에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운동 열심히 하는구나.’ ‘잘했어! 내가 기분 좋게 해 줄게.’     이 소리가 어디에서 나는 것일까? 심장일까? 뇌일까? 아니다. 이 둘은 따로가 아니다. 몸이 신호를 보내면 머리가 반응한다. 몸을 움직이면, 심장이 뛰고, 뇌까지 올라간다. 뇌에서 널브러져 있던 물질이 출렁임을 받아서 게으름에서 깨어난다. 서로 같은 물질을 찾아 헤매면서 연결고리가 탄탄해진다. 뇌세포 시냅스가 두꺼워질 때, 뇌는 기운이 넘친다.     이 물질은 도파민, 세로토닌 혹은 엔도르핀이라고 불리는 호르몬이다. 기분을 좋게 만드는 물질이다. 도파민은 뇌 속에 점점이 흩어져 있다. 따로 떨어져 있는 도파민은 소량이라서 별로 기분을 좌우하지 못한다. 뇌는 혼자서는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가만히 두면 게으르기 그지없다. 원시 동굴인들은 사냥을 위해서는 쉴 틈이 없었다. 온종일 뛰어다니고 나면, 뇌에서 도파민이 땀처럼 솟았다. 뇌는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하면 기분을 좋게 만드는 메커니즘이 있다. 기분이 좋아야 사람들이 계속할 테니까 말이다.   또한 뇌는 그렇게 빨리 진화하지 않는다. 현대인의 뇌는 2만 년 전 원시인의 뇌와 비슷하다. 동굴인은 누가 나타나면 일단 먼저 활을 쏘았다. 적인지 친구인지 생각하다가는 죽을 수도 있으므로 일단 저지르고 보았다. 그리고 나중에 생각했다. 내가 적을 죽였는가? 우리 편을 죽였는가? 실수였는가? 반성이라는 생각은 항상 나중에 따라온다. 뇌는 행동이 먼저고 생각에 더디다. 만약 우울하다면, 머리 싸매고 생각해 봤자 소용없다.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걸으시라!     동생이 왜 그렇게 운동에 집중하는지 알 것 같다. 햇빛을 받으며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하면 행복 호르몬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낮에 쓰다 남은 세로토닌은 저녁에 멜라토닌으로 변하여 잠까지 잘 오게 한다니. ‘별것’ 아닌 걷기와 ‘별것’ 아닌 스트레칭을 첫 새벽부터 하는 모습에서 나는 감동을 받았다. 마치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그런데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 맞다. 나를 잘 돌보는 것….   동생은 잠깐 다니러 온 사이에 나에게 무엇인가를 남기고 돌아갔다. 선한 에너지는 전파력이 강하다.     청바지를 입고 트렁크를 끄는 동생의 뒷모습이 날씬해 보였다. 김미연 / 수필가살며 생각하며 도파민 세로토닌 운동복 차림 운동 루틴

2024-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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